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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프로필(3) 낭만닥터 김사부 3 2000년대 휴식기-슬럼프- 2011년 화려한 부활, 제2의 전성기, 그 후

지후나라 발행일 : 2023-05-19

 

프로필 

한석규

영화배우, 탤런트

출생 1964. 11. 3. 서울특별시

소속사 클로버컴퍼니

가족 배우자 임명주

학력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수상 2016년 SAF 연기대상 대상

        2011년 SBS 연기대상 대상

 

한석규
한석규 인터넷 검색

한석규 프로필

한석규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북구 종암동에서 1964년 11월 3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청주 한 씨, 신체 중 키는 178cm, 체중은 64kg, 혈액형은 AB형으로 신발 사이즈는 270mm이다.

 

한석규는 1998년 결혼하여 배우자 임명주와 2남 2녀를 두고 있다. 한석규의 학력사항은 서울숭례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용문중학교를 졸업하고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 학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한석규의 종교는 무종교(무신론), 병역은 대한민국 육군 제27보병사단 의병전역했다.  소속사는 클로버 컴퍼니로 데뷔는 1990년 KBS 성우극회 22기, 1991년 MBC 제20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한석규 KBS 성우 활동 ~  1990년대 초반 MBC 공채 시절

 

 

한석규 프로필(1) 낭만닥터 김사부 3 한석규 KBS 성우 활동 ~ 1990년대 초반 MBC 공채 시절까지

프로필 한석규 영화배우, 탈런트 출생 1964. 11. 3. 서울특별시 소속사 클로버컴퍼니 가족 배우자 임명주 학력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수상 2016년 SAF 연기대상 대상 2011년 SBS 연기대상 대상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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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1990년대 중, 후반 최고 전성기 ~ 하락세

 

 

한석규 프로필(2) 1990년대 중, 후반 최고 전성기~하락세

프로필 한석규 영화배우, 탤런트 출생 1964. 11. 3. 서울특별시 소속사 클로버컴퍼니 가족 배우자 임명주 학력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수상 2016년 SAF 연기대상 대상 2011년 SBS 연기대상 대상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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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2000년대 초반 3년 2개월의 휴식기

 

한석규는 2003년 1월 영화 이중간첩으로 복귀하기까지 3년 2개월이라는 공백기를 지난다. 하지만 3년 2개월 동안 마냥 쉰 것만은 아니었다. 신약 개발과 관련된 SF물인 <제노사이드>,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광우>에 캐스팅되어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었으나, 광우의 경우 제작사에 문제가 있어서, 제노사이드는 시나리오 수정이 되지 않아서 영화가 무산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석규의 그 3년 2개월 동안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가 한석규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송강호는 반칙왕으로 씬 스틸러 조연급을 넘어 주연 데뷔에 성공적으로 안착, 공동경비구역 JSA로 자리를 확실하게 잡았으며 최민식은 쉬리를 통해 슬럼프를 완전히 씻어내고 해피 엔드와 파이란으로 정상의 자리를 공고히 다졌다. 설경구는 99년 박하사탕으로 혜성같이 등장하여, 2002년에는 1997년의 한석규처럼 공공의 적, 오아시스, 광복절 특사를 연속으로 히트시킨다. 3년 2개월의 공백기 동안 세대교체가 순식간에 이뤄지게 된 것이다.

 

한석규  2000년대 중, 후반 슬럼프

한석규의 3년 2개월 간의 공백 끝에 2003년 1월 영화 이중간첩으로 복귀한다. 사실상 한석규라는 이름은 한국 배우 중 최초로 흥행불패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굉장한 주목을 받았지만... 한석규는 배우 데뷔 이래 최초로 쓰라린 실패를 맛보게 된다. 69억이라는 제작비가 들었으나 흥행 기록은 서울 361,580명 전국 1,025,928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사실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형편없는 것은 아니라서 차후 어느 정도 재평가되긴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상대 여배우인 고소영의 연기력이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부족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아무리 발연기한다고 욕먹는 배우들도 연기 연습만큼은 어떻게든 단단히 시키고 나오는 시대인지라, 연기력이 부족하다고는 느낄 수 있어도 아주 수준 이하라고 느끼는 경우는 드문데 이 작품에서 고소영이 한 연기는 2010년대에 본다면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로 형편없었다. 여주인공이라는 사람의 연기가 극악한 수준이니 영화가 잘 되는 것을 바라는 것도 욕심이었을 듯.

 

한석규의 흥미로운 인터뷰, 이중간첩 복귀 전 공백 기간 동안 한 기자는 왜 공백기를 가졌냐고 묻자, 지금은 한국영화의 거대한 거품이 낀 시기고 이 거품이 다 빠져나간 후에서나 진짜 작품 활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01년 ~ 2003년은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어 가는 감독, 작품, 배우들이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온 시기였다. 특히 2003년은 박찬욱의 올드보이,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김지운의 장화, 홍련이 한꺼번에 출현했던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황금기였다.

 

그리고 2014년 12월 손석희 사장과의 인터뷰에서는 부흥기였지만 거품이 굉장히 많은 시기였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하지만 영 틀린 말도 아닌 것이 봉준호, 박찬욱을 위시한 몇몇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거장들과 많은 걸작들이 탄생한 시기였지만 사실 2000년대 초반은 이 감독들의 전성기가 아니라 그들이 그제야 주목을 받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 한국 영화의 명작들 중에서는 정작 개봉 당시에는 그저 그런 흥행과 평가를 받았다가 훗날 재평가된, 시대를 앞서간 작품들도 있다.

 

다시 말해 당시만 해도 그들의 존재는 한국 영화계에서 지극히 일부였고 오히려 메인스트림에서는 오직 수익만 노리는 개그 + 신파 + 조폭이라는 코드로 묶을 수 있는 2000년대 초중반의 B급 이하의 영화들이 무더기로 양산된 시기이기도 했다.

 

개그+조폭+신파라는 장르마저 새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영화들이 양산되었고 이런 작품의 주연들이 온갖 예능에 출연해서 개봉 1~2주간 후딱 벌어먹고 빠지는 식의 쓰레기스러운 현상이 지속되었던 시기였다. 특히 상술한 명작들도 많았지만, 망작의 대명사인 긴급조치 19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주글래 살래, 클레멘타인 모두가 한석규의 휴식기 ~ 복귀 시점인 2002년 ~ 2004년에 나온 작품이다.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현재 2010년대에도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게 문제.

 

여하튼 한석규는 결국 2003년 프리미어에 손예진과 함께 과대평가된 배우에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는다. 아이러니하게도 1996년 6월 프리미어에서 선정한 한국 배우 평가에서는 한석규가 당시 최고의 배우로 평가를 받았던 안성기, 박중훈, 문성근, 이경영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후 형과는 결별했는지 과작(寡作)의 대표적인 배우였던 한석규는 다작(多作) 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2004년에는 스릴러 영화 주홍글씨, 2005년에는 정치 블랙 코미디 작품인 그때 그 사람들에 출연한다. 주홍글씨의 경우 첫 주에 흥행 1위를 기록하는데 초반의 흥행을 이어나가지 못하면서 하락세가 대폭 심해졌고, 영화 역시 흥미진진한 초반과는 다르게 후반으로 갈수록 뚝뚝 끊기면서 작품성이나 흥행이나 용두사미적인 작품으로 끝났다. 서울 489,254명, 전국 1,437,549명으로 겨우 손익분기점은 넘긴 수준. 한 때의 흥행의 제왕이었던 한석규의 위상을 생각해 보면 사실상 대중들에게 다가오는 느낌은 흥행 실패에 가까웠다. 이런 이유로 주홍글씨 개봉시기에 평론가 하재봉은 이제 한석규의 시대는 갔다. 그는 한물 간 배우가 되었다고 대놓고 깠다.

 

그때 그 사람들은 좋은 소재를 제대로 끌고 나가지 못한 면이 있었고 서울 338,025명, 전국 1,083,962명(제작비 60억)을 동원하는 데 그치면서 두 번째 영화 실패작으로 남게 된다.

 

3년의 공백이 무색하도록 2005년에는 또 다른 작품에 출연했는데 초심을 찾기 위한 것인지 안전해 보여서 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닥터 봉 이후 10년 만에 코미디 영화 미스터 주부퀴즈왕에 출연했다. 하지만 배급사에서도 버린 카드라고 생각했던지 제대로 홍보도 안 되었고 개봉 얼마 후에 케이블에서 볼 수 있었다. 서울과 전국 합해 50만 명도 기록 못한 처참한 실패작.

 

복귀 이후 세 작품을 실패했지만, 그래도 한석규라는 이름에 기대를 많이 했는지 절치부심하는 심정으로 도전했는지 2006년에는 세 작품에 연달아 출연한다. 그것도 단독주연이 아닌 공동주연으로.

 

영화 스캔들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김대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음란서생'은 서울 868,692명, 전국 2,576,022명을 동원했으며, 관객들로부터 작품성 역시 인정받았다.

 

이로써 그도 침체기에서 벗어나는가 싶었다. 그러나 다음 작품인 영화 구타유발자들은 서울과 전국 관객 합쳐 20만 명도 기록하지 못하여 역대 한석규 출연작들 중 최저의 흥행스코어를 기록한 영화로 남게 되었다. 구타유발자들은 상영한 지 10여 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숨겨진 명작, 또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회자되고 있지만 실상을 따지면 왜 실패했는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영화를 실제 보면 알겠지만 포스터에 한석규가 나올 뿐 실제 한석규는 특별출연에 가까운 느낌이다. 원래 제안받은 역할은 이문식이 맡았던 봉연 역할이었지만 시나리오를 곰곰이 검토한 한석규는 문재 역할이 자신에게 어울릴 것이라 생각하고 역으로 제안한다. 다만 한석규 외의 다른 출연배우들의 이름값이 조연에 불과했던 이문식이나 당시에는 올드보이의 감옥사장 정도로나 기억되던 오달수나 신인이었던 차예련, 김시후 등이었기 때문에 크레디트이나 포스터에 얼굴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영화 전체의 흐름을 보면 초반과 막판을 제외하고는 한석규는 얼굴조차 안 비친다. 그런 영향이 흥행에 영향을 준 것도 적지 않다.

 

그 해 가을 개봉한 8년 만의 멜로작품인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은 현실적이고 공감이 간다는 평과 지나치게 밋밋했다는 평 두 가지가 크게 갈리는 작품이었고, 흥행에 실패했다.

 

2006년에 세 작품이나 출연하며 다작을 했던 한석규는 2007년에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2008년 영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컴백했다. 당초 감독을 맡기로 했던 안권태 감독이 촬영 중반 곽경택 감독으로 교체되면서 대본이 수정되었고, 비중 문제로 안 좋은 말이 나왔던 작품으로 촬영 자체가 험난한 작품이었다. 더구나 같이 개봉했던 작품이 다크 나이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미이라 3: 황제의 무덤으로 상당히 불리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나름 선전, 2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고, 손익분기점도 간신히 넘기고 그나마 중박은 쳤다.

 

2009년에는 주연으로 영화 백야행에 출연한다. 원작소설도 3권씩이나 되고,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로 나왔어야 할 분량을 2시간짜리로 압축했으니. --작품 완성도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2010년, 한석규는 코미디 영화인 이층의 악당을 통해 다시 도전했다. 특히 닥터봉을 통해 서로에게 윈윈이었던 김혜수와의 합작이어서 많이 기대했고 그전과는 달리 이번엔 2005년 '달콤 살벌한 연인'으로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한 손재곤 감독과의 작품이었는데 촬영 전부터 좋은 시나리오라며 호평을 들었고 또 평론가들 역시 호평을 아끼지 않으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기대도 컸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한석규는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위상이 확연히 다르다. 이렇게 몰락하게 된 이유는 4년간의 공백으로 한석규의 역할을 대신할 배우들인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황정민 등이 급성장했고, 한석규 역시 2000년대 선택한 작품들이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며 많이 밀리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선구안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사실 선구안도 문제지만 한석규 외에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들이 많이 생겨났고, 굳이 그 개런티 줘가면서 한석규를 쓸 이유가 없으니 21세기 들어서는 시나리오가 애초에 잘 안 가게 되었다.

 

한석규의 부진에 대해 너무 검증되지 않은 신인감독과 작품을 한다는 것을 원인으로 꼽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어느 정도 타당한 이야기. 대부분의 흥행배우들을 보면 감독과 배우들이 인맥으로 같이 가는 경우가 많은데, 한석규의 경우 신인감독과의 작품을 고집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박찬욱, 김지운, 이창동, 봉준호 감독 등 검증된 감독과 작품을 하는 최민식, 송강호라든지, 강우석, 윤제균 감독 및 그 연출부 출신들과 작업을 하는 설경구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한석규의 경우 데뷔작을 같이 했던 이광훈 감독은 닥터 봉 이후 패자부활전, 자귀모, 천년호라는 영화 팬들은 알만한 최악의 작품을 연속으로 연출하며 2003년을 끝으로 영화계에서 자취를 감췄고 현재 뉴욕에 거주 중이다. 그리고 은행나무 침대와 쉬리를 같이했던 강제규는 현재 제작에만 전념하며 가뭄에 콩 나듯 연출하다가 마이웨이의 실패와 한중합작영화 제작 실패 등등의 악운이 겹쳤으나 다시 영화연출을 하게 되었다. 한편 초록물고기의 이창동 감독과 8월의 크리스마스의 허진호 감독은 활발하게 작업을 하는 감독이 아니고 접속과 텔 미 썸딩을 같이 했던 장윤현 감독은 그 후 썸, 황진이, 가비가 연속으로 실패해 버렸다. 거기에 넘버 3의 송능한 감독은 아예 영화계를 떠났다. 즉, 8편 연속 흥행으로 1990년대 전성기를 가져다준 감독 중 현재에도 활발하게 작업을 하고 있는 감독들이 거의 없는 게 사실이다.

 

이처럼 2002년까지 티켓파워 1위를 기록했던 그가 2000년대 침체기 이후에는 언론에서는 거론조차 되지 않았으며, 가끔 하는 설문조사 순위권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석규  2011년 화려한 부활, 제2의 전성기, 그 후

 

이층의 악당까지 실패하자 한석규는 15년 간 하지 않았던 TV 드라마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다. 2011년 하반기 SBS 수목 드라마인 뿌리 깊은 나무에 세종 역으로 복귀. 욕쟁이 세종 장난기,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리고 진지한 역할을 깊이 있게 선보이면서 열연하여 역시 한석규 어디 가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명실상부한 배우의 입지를 다시금 드러내 보인 것.

 

뿌리 깊은 나무 15회에서 밀본의 하수인이자 집현전 학사들을 의문사시킨 윤평(이수혁 분)을 직접 추궁하며 강직, 비굴, 냉소를 담은 3단 폭풍열연을 펼쳤다.  

 

눈물을 머금은 채 "광평과 소이의 털끝이라도 건드린다면 의금부, 내금위, 우림위, 별시위, 겸사복뿐 아니라 모든 병력을 총동원하여 네놈들을 모조리 소탕하고, 저잣거리, 모든 백성들 앞에서 사지를 거열한 뒤, 그 시신을 조선 팔도에 나눠 걸어 국본을 바로 세우겠다"며 강직한 모습을 선보였다.

 

그러다 이내 그는 "제발 알려다오. 우리 광평만 살려다오. 내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비굴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이도 잠시, 그는 "둘 다 아니다. 난 네 놈들이 누군지 관심 없다. 또한, 네 놈들이 뭘 원하건 상관치 않는다. 너희들이 뭘 원하건, 네 놈들은 원하는 걸 하나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라며 "반드시 그리 만들 것이다. 하여 네 따위 놈들과 협상은 없다. 또한! 네 놈들에게 피로써 되갚지도 않을 것이다! 너희들이 어찌 실패하게 되는지 똑똑히 두고 보거라"라며 냉소적이면서도 힘주어 말하는 3단 열연을 선보였다.

 

방송 직후 시청자의견 게시판은 "명불허전, 카리스마 연기란 바로 이런 것. 한석규 씨의 연기에 전율이 느껴졌다", "실제 세종대왕도 이런 상황이면 한석규처럼 말하고 행동하셨을 것 같다" "SBS 연기대상은 맡아놨다" 한석규 연기 보고 있으면 숨이 멎는 것 같다"며 호평 일색이었다. 신들린 연기력에 만장일치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 결과, 예상대로 2011 SBS 연기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전에 드라마 스페셜 남자 최우수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정작 상을 타게 된 건 젊은 두 후배들. 제작진이 노렸는지 소감 발표 중 수상자와 전혀 상관없는 한석규에게 잠깐 카메라 단독샷이 잡혔다. 이에 본인은 그저 대인배의 뿌듯한 미소만 지을 뿐. 최우수상은, 지랄. 곧 나의 대상 소식은 온 국민들에게… 그래, 역병처럼 퍼져나갈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의 성공으로 화려한 부활을 하면서 모처럼 CF를 2편이나 계약했고, 많은 시나리오를 받으며 다시 영화에서 명예 회복의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2013년 류승완 감독과 하정우, 전지현과 함께한 영화 베를린이 개봉 3일 만에 100만, 개봉 14일 만에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 450만 명을 넘기면서 710만 명을 동원하는데 성공, 영화 쪽에서도 완벽하게 부활에 성공했다. 현재 이 수치는 2000년대 이후 한석규의 최고 흥행성적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아니라서 최고 흥행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뒤이어 개봉한 파파로티도 이제훈의 군입대 및 7번 방의 선물의 흥행 호조 등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주연배우로서 성실하게(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예능 출연 혹은 언론 노출 등) 홍보한 덕에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넘기게 되었다. 전성기처럼 원톱 주연으로 나오기는 힘들어졌지만, 선후배 배우와의 투톱으로 출연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주조연급으로 수요가 많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출연 제의가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라 한다.

 

덤으로 베를린에서 필모그래피 사상 최초로 크레디트 둘째 줄에 이름을 올렸다. 데뷔작 닥터봉부터 시작해서 한 번도 크레딧 첫째 줄을 놓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로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한석규가 극의 중심이 아니어도 극이 돌아가게 하는 배우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한석규 스스로도 주연만 고집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2012년 11월 영화 파파로티 촬영 이후 휴식을 취하던 한석규는 황우석 교수 사건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제보자에 출연을 제의받았으나 검토 후 거절하였다. 그리고 2013년 11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집필했던 김영현 작가의 제의를 받아 드라마 파천황에서 정도전 역을 제의받았다. 2014년 4월 경에 방영 예정이었으나 KBS 드라마 정도전과 시기가 비슷하고, 정도전의 경우 먼저 방영한 데다가 오랜만에 정통 사극이라는 점에서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반면, 파천황은 퓨전 사극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MBC가 편성을 보류했다. 이후 파천황은 SBS로 이동하여 육룡이 나르샤로 방영되었다.

 

그 이후 2013년 12월, 영화 '상의원' 출연을 확정 지었다.  동시에 비밀의 문에도 캐스팅되자 한석규가 사극만 너무 고집한다는 평이 조금씩 나왔다. 물론 '상의원'과 비밀의 문 모두에서 한석규는 그야말로 절정의 연기력을 선보였지만, 그러한 평에도 불구하고 두 작품은 시청률과 관객수에서 모두 참패를 거두었다.

 

영조 임금을 연기하고 싶어서 출연한 비밀의 문에서조차 초반에는 발음 문제까지 지적받은 데다 '뿌리 깊은 나무'에 이어 또 왕 역할을 맡아 질린다는 혹평도 받은지라 당분간 사극 출연은 자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한 내막을 살펴보면 한석규의 연기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지만 두 작품 모두 다 각본에 크게 하자가 있었다.

 

특히 비밀의 문은 과연 2010년대의 작품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루한 전개와 밋밋한 연출로 2010년대의 배우와 장비를 가지고 만든 80~90년대 KBS 대하드라마 느낌이었으니 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예로 드라마 내용은 어쩄건 한석규가 나오는 하이라이트 부분만 편집된 영상들의 댓글에는 한석규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자자하다. 보면 알겠지만 비밀의 문에서도 한석규의 연기 실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2015년 두 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김훈 중위의 의문사 문제를 다룬 '아버지의 전쟁'은 투자자가 없어서 제작이 엎어졌고, 김래원과 함께 출연하는 영화 '프리즌'은 2016년 3월에 제작에 들어가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다.(총 관객 293만 명)

 

2017년 1월까지 방영됐던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21화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는 첫방부터 막방까지 전체 월화드라마 중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최고 시청률 27.6%를 기록하며 2016년 SBS 드라마 시청률 1위에 등극했기에 '뿌리 깊은 나무' 이후 또 다른 그의 히트작이 되었다. 극 중에서 타이틀롤 김사부 역을 맡아 명실상부한 연기력과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 드라마로 5년 만에 다시 2016 S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뿌리 깊은 나무부터 시작해서 드라마에서 맡는 캐릭터가 전부 비슷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세종부터 김사부까지 모두 뛰어난 능력을 갖췄고 심지도 굳지만 아웃사이더 기질로 이해자가 적고 입이 걸은 캐릭터다.

 

2019년 3월 20일 개봉한 우상에서는 시민들에게 지지를 받는 유력 도지사 후보이지만, 아들의 뺑소니 사고로 위기에 몰리자 정치적 야욕을 위해 폭주하는 정치인을 연기했다. 시민들 앞에서는 온화하지만, 궁지에 몰리자 비겁하게 변하는 야누스적인 연기를 보였다. 영화의 작품성은 호불호가 갈리고, 특히 대사가 안 들린다는 불만이 상당히 많이 제기되었다.

 

2019년 7월 OCN 드라마 WATCHER에 출연하면서 3년 만에 드라마로 복귀했다. 감찰반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한 수사물이며,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인생이 무너진 세 남녀가 경찰 내부 비리조사팀이 되어 권력의 실체를 파헤치는 심리스릴러 드라마다. 누구를 믿어야 할지 분간할 수 없게 치밀하고 짜임새 있는 스릴러적 구성을 보여주어, 시청률 6.6%로 보이스 2에 이어 OCN 역대 시청률 2위를 기록했다.

 

2019년 12월 26일 천문: 하늘에 묻는다가 개봉되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세종과 관노로 태어나 종 3품 대호군이 된 천재 과학자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행간을 채운 영화로 관객 200만 명을 불러들였다. 쉬리 이후 최민식과 20년 만에 호흡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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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  2020년~

한석규는 2020년 낭만닥터 김사부 2에 출연했다. 시청률 20%를 뛰어넘으면서 호평받고 있다. 여기서도 무르익은 연기를 펼쳐주고 있다. 13회에서 돈 때문에 다리를 포기하고 수술 의지가 없는 환자를 향해 "돈 때문에 다리를 포기하나. 그렇게 알아서 포기해 주는 사람은 세상도 별로 관심이 없어. 당신 아들도 그렇게 보고 기억하고 배운다. 팔자 탓, 재수 탓이나 하고, 자포자기하는 아버지로 그렇게!"라며 환자를 질타하며 설득했다.

 

한석규는 14회에서는 불법 시술을 하는 병원에 스카우트하려는 박종환에게 "돈 때문에 가족도 팔고 양심도 팔고 이제 동료의사까지 팔아먹느냐, 그래도 절대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게 있어. 그게 바로 양심이야"라며 분기탱천하는 흡인력 있는 연기로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돈 때문에 시리즈를 화통하게 완성했다.

 

한석규는 첫 방송을 시작한 이후 연일 자체 최고 시청률 행진을 이어가며 시청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최종회는 닐슨코리아 기준, 수도권 시청률 27.2%, 전국 시청률 27.1%, 2049 시청률 11%를 기록했고, 순간 최고 시청률 28.4%를 돌파하며, 또다시 자체 최고 시청률을 다시 썼다.

 

한석규
한석규

한석규  출연작 : 영화  

개봉 연도 제목 배역 출연 여부 관객수 흥행
2019 천문: 하늘에 묻는다 세종 주연 200만명 실패
우상 구명호 18만명
2017 프리즌 정익호 293만명 성공
2014 상의원 조돌석 79만명 실패
2013 파파로티 나상진 170만명 성공
베를린 정진수 710만명
2010 이층의 악당 강창인 40만명 실패
2009 백야행-하얀 어둠 속을 걷다 한동수 140만명
2008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백성찬 205만명 성공
2006 사랑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심인구 21만명 실패
구타유발자들 이문재 16만명
음란서생 김윤서 257만명 성공
2005 미스터 주부퀴즈왕 조진만 33만명 실패
그때 그 사람들 주 과장 108먄명 실패
2004 주홍글씨 이기훈 143만명 성공
2003 이중간첩 림병호 102만명 실패
1999 텔 미 썽딩 조민석 205만명(전국) 성공
쉬리 유중원 695만명(전국
1998 8월의 크리스마스 유정원 45만명(서울)
1997 접속 권동현 150만명(전국)
넘버 3 서태주 30만명(서울)
초록물고기 김막동 20만명(서울)
1996 은행나무 침대 수현/종문 185만명(전국)
1995 닥터 봉 봉준수 40만명(서울)

1996~1999년 기간 동안 한국 영화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는 전성기를 구가하였다고 평가받았으며 중년이 된 2010년대 이후에도 뛰어나 필모그래피를 이어가고 있다. 1990년대 출연작 총 관객수 1,370만 명.

 

한석규  출연작: 드라마

방영 연도 방송사 작품명 배역 비고 시청률
미정  JTBC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장재욱 주연  
2023 SBS 낭만닥터 김사부 3 김사부/부용주  
2022 WATCHA
CHANNEL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창욱  
2020 SBS 낭만닥터 김사부 2 김사부/부용주 27.1%
2019 OCN WATCHER  도치광 6.6%
2016-17 SBS 낭만닥터 김사부 김사부/부용주 27.6%
2014 비밀의 문 영조 10.0%
2011 뿌리깊은 나무 세종 25.4%
1997 MBC 남자 셋 여자 셋 문화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졸업생 한석규 특별출연  
1995 전쟁과 사랑   특별출연  
호텔 임형빈 주연 36.5%
1994 까레이스키 유재상 단역 7.5%
베스트극장-그들만의 방 재현 주연  
도전   조연  
서울의달 김홍식 주연 48.7%
1993 한지붕 세가족 방범대원(3기)/진우(4기) 단역/조연  
폭풍의 계절   단역  
파일럿 박상현 주연 46.2%
1992 아들과 딸 한석호 61.1%
1991 여명의 눈동자 서부겅년단 단원 단역 58.4%
우리들의 천국 현철 조연  
1990 전원일기 남면 우체국 견습 집배원 단역  
대원군 덕휘공  

 

 

 

 

인물관계도
낭만닥터 김사부3 인물관계도 (사진: sbs 공식홈)

 

낭만닥터 김사부 3 방송 시간 몇 부작이지?

낭만닥터 김사부 3

SBS 드라마 금, 토요일 오후 10:00.  16부작. 2023.4.28.~

제작: 유인식, 강보승(연출), 강은경, 임혜민(극본)

소개: 지방의 초라한 돌담병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진짜 닥터' 이야기

 

낭만닥터 김사부 3 김사부 역 한석규

김사부 역(국내 유일 트리플 보드 외과의)

본명 부용주. 한때 신의 손이라 불리었던 자. 지금은 스스로를 낭만닥터라 칭하며 은둔생활을 즐기고 있는 진짜 괴짜 의사. 세상에서는 그를 김사부라 부른다 시골의 돌담병원이라는 곳에서 외과과장을 하고 있다. 한때는 외로이 돌담병원을 지켜왔으나,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돈만 주면 뭐든지 하겠다는 마인드에서 진정으로 환자를 위할 줄 아는 의사로 거듭난 서우진이 있고, 더 이상 울렁증에 수술방을 뛰쳐나가지 않는 차은재가 있다. 제자들, 동료들과 함께 권역외상센터의 꿈을 키워 온 김사부. 드디어 돌담병원에 권역외상센터를 짓게 된다. 깔끔한 외경에 최첨단 시설까지 갖춘 완벽한 외상센터. 하지만 제대로 문을 열지도 못하고 권역외상센터는 위태로운 운명을 맞게 되는데... 김사부는 그의 숙원이었던 돌담병원 권역외상센터를 설립할 수 있을까. 출처 : 공식홈

 

한석규 (탤런트, 영화배우) 1964.11.03 낭만닥터 김사부 3(2023),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2022), 낭만닥터 김사부 2(2020), WATCHER (왓쳐)(2019) 등


 

 

낭만닥터 김사부 3 : 4/28(금) 밤 10시 첫 방송

 

 [1차 티저] "살린다" 한석규의 낭만이 다시 시작된다.

 

 

 [3차 티저] "우리가 포기하는 순간, 사람들이 죽어요" 기적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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