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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훈 프로필 전 축구선수 골 때리는 그녀들

지후나라 발행일 : 2023-06-14

프로필

전 축구선수

백지훈

출생 1985. 2. 28. 경상남도 사천

신체 177cm, 68kg

소속사 스포츠바이브

가족 1남 1녀 중 둘째

학력 안동고등학교

데뷔 2003년 전남 드래곤즈 입단

사이트 인스타그램, 유튜브

 

백지훈
백지훈 인스타그램

백지훈 프로필

빅지훈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사천시에서 1985년 2월 28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수원 백 씨.

 

백지훈의 키는 177cm 체중은 65kg 혈액형은 A형이다.

 

백지훈의 직업은 축수선수(미디필터, 현재 은퇴) 축구해설가 등이 있다.

 

백지훈의 등번호는 FC서울 22번, 8번/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번/ 상주 상무 20번/ 울산 현대 15번/ 서울 이랜드 FC 10번/ 리만 FC 20번/ 대표팀 8번(2005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12번(2005 동아시안컵), 15번(2006 FIFA 월드컵 독일) , 21번(2006 겨울 전지훈련) 등이 있다.

 

백지훈의 학력은 봉래초등학교 졸업했다. 풍기중학교를 졸업했다. 안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백지훈의 선수로 소속된 곳은  전남 드래곤즈 (2003-2004), FC 서울(2005-2006), 수원 삼성 블루윙즈(2006-2016) -> 상주 상무(2012-2013 군복무) -> 울산 현대(2014/임대), 서울 이랜드 FC(2017) 리만 FC(2018-2019) 기타로 CJ ENM (2021/ 해설위원)등 소속되었었다.

 

백지훈은 대한민국 국가대표로 2005-2010년 15경기 /골이다.

 

백지훈의 가족은 부모님이 계시고, 1남 1년 중 둘째다.

 

백지훈의 종교는 불교로 기록되어 있다.

 

 

백지훈
백지훈 인스타그램

백지훈 활동

 

백지훈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이다.

 

 유스 시절

고향인 경남 사천에서 공을 차던 백지훈은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에 경남 축구 명문 초등학교인 진주 봉래초등학교에 스카우트되어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이후 진주중학교로 진학했고, 3학년에 영주시 풍기중학교로 전학 갔다. 안동고 최건욱 감독의 스카우트를 받고 안동고로 진학하기 위함이었다.

 

백지훈은 안동고에서 2학년부터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3학년에는 동기 김진규와 함께 부산 MBC배 전국고교선수권 우승과 MVP를 수상했고, 당시 U-19 대표팀을 이끌던 박성화 감독에 눈에 띄어 두 살 월반해 청소년 대표팀에 소집되기도 하는 등, 고교 최대어로 성장했다.

 

전남 드래곤즈

백지훈은 안동고를 졸업한 2003년 같은 빠른 85년생인 김진규와 함께 고교 최대인 계약금 3억을 받으며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했다. 본가인 사천시와 광양시가 가까운 게 큰 이유로 작용했다고 한다.

 

백지훈은 2003 시즌 초반 이회택 감독에게 윙 자원으로 분류되며 센터백 김진규와 함께 기회를 받았지만, 이내 노병준, 신병호, 김승현, 주광윤 등에게 밀렸다. 결국 5월부터 2군으로 내려가 R리그에서만 출전했다. 동기인 김진규와 비교되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당시 2군 감독이던 김상호에게 많은 것을 배우며 절치부심했다.

 

백지훈은 2004 시즌을 앞두고 이장수 감독이 새로 부임했고, 부상당한 김남일의 대체자로 많은 기회를 받게 된다. 리그에선 7경기 출전에 그쳤지만, 리그컵에선 거의 모든 경기에 나서며 이장수 감독의 신임을 받았다.

 

백지훈은 2005년을 앞두고 이장수 감독이 FC 서울로 이적하며 백지훈을 데려간다. 같은 유망주였던 이준영과 1대 1 트레이드로 서울의 유니폼을 입었고, 서울과 2년 계약을 체결했다.

 

백지훈은 2005 시즌 등번호 22번을 달았다. 그러나 초반엔 자리를 잡지 못하며 R리그를 전전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엔 이장수 감독 전술의 페르소나인 히칼도가 있었기 때문. 결국,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지션을 변경하며 한태유, 김성재(축구) 등과 로테이션 자원으로 분류됐다. 그래도 서울 입단 동기인 박주영과 함께 서울 최고의 인기스타로 발돋움하며 흥행에 많은 기여를 했다.

 

백지훈은 2006 시즌 등번호 8번을 달았다. 합류한 지 두 번째 시즌만에 윤상철 - 김성재 등 구단 레전드가 달았던 8번을 이어받은 만큼 구단에서 기대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 영입된 김한윤에 기존 한태유 등 수비적인 미드필더를 선호하는 이장수 체제에선 지난 시즌처럼 후반 조커로 투입되는 경우가 많았고, 아드보카트호를 오가며 체력적으로도 완전하지 않은 몸상태로 시즌을 보냈다. 설상가상으로, 이장수 감독과 불화설이 터지며 입지가 좁아지는 등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서울 팬들은 백지훈의 홈런성 중거리 슛과 부실한 수비력, 1년 반 동안 한 개의 어시스트도 기록하지 못하는 능력에 학을 뗄 정도로 싫어했으며, 무엇보다도 얼빠를 부르는 외모 때문에 그 능력이 과대평가되었다고 이야기하며 박주영이나 정조국, 김동진, 이을용 같은 선수들에 비해서는 낮게 평가받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2006년 7월, 해외 진출을 노리며 재계약을 하지 않던 백지훈을 6개월 뒤에 FA가 되면 국가대표팀 미드필더를 돈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내보내야 할 상황이었다. 결국 감독과 구단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며 시장에 내놓았고, 마침 전남 시절부터 백지훈을 탐내던 수원이 15억 원 이상의 이적료를 제시하자 선수 동의 없이 구단 간 이적을 합의한다.

 

백지훈 측은 하우젠컵 우승과 해외진출을 눈앞에 두고 떠나기 싫어하기도 했지만, 수원으로 이적하지 않으면 임의탈퇴를 시키겠다는 서울의 협박으로 인해 월드컵 직후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된다.   백지훈 등번호는 일본으로 떠난 최성용의 20번을 받았다.

 

수원 팬들은 고종수나 김두현처럼 중원에 창의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인재라는 이유로 환영했으나, 서울 팬들은 '확실한 핵심 선수도 아니었는데... 그래도 하필이면 왜 수원이냐...' 하는 심정으로 백지훈의 이적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서정원 이적 파동 때와 달리 애초에 서울의 주전 선수도 아니었던 백지훈의 이적은 양 팀 간 증오를 낳는 수준은 아니었다.  서울 시절과는 다르게 팀의 중심으로 좋은 활약하게 된다.

 

함께 수원으로 이적한 이관우와 함께 중원에서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 또한, 백지훈의 약점인 수비력을 보완하기 위해 차범근 감독은 후방에 김남일, 송종국 그리고 김진우 등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두며 백지훈과 이관우의 공격력을 극대화했다.

 

결국, 백지훈은 후반기 14경기 5골을 기록하며 수원의 후기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성남에 지며 K리그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월드컵을 경험한 뒤 차범근 감독 아래서 포텐이 제대로 터졌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커리어 유일의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시즌 초반 등 부상과 올림픽 대표팀 차출로 인해 4월 중순까지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다 복귀전인 제주전 마수걸이 득점에 성공하며 폼을 끌어올렸다.

 

주로 결승골을 넣으며 백지훈이 득점한 경기에서 수원이 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승리의 파랑새라는 별명이 붙게 된다.

 

백지훈은 이후 중원에서 이관우, 김남일, 송종국, 조원희 등과 호흡을 맞추며 팀을 정규리그 2위에 올렸다. 하지만, 10월 초에 부상을 당해 플레이오프에 결장했고, 다시 한번 리그 우승에 실패한다.

 

백지훈은 그래도 리그와 리그컵에서 23경기 6 득점 1 도움을 기록하며 프로 데뷔 이후 한 팀에서 가장 많은 출장과 득점을 기록한 시즌이 됐다.  시즌을 앞두고 김남일, 안정환, 나드손 등 스타 선수들이 이탈한 수원에서 에이스로 평가됐다. 하지만, 대전과의 개막전부터 대퇴부 근육 부상을 당해 5월 중순까지 아웃됐다.

 

백지훈은 복귀한 광주상무 전에서 서동현의 헤더를 어시스트하며 복귀를 알렸고, 인천전 후반 추가시간에 쐐기골을 터뜨리며 시즌 마수걸이 득점을 기록했다.

 

백지훈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복귀한 경남전에서 후반 시작과 함께 투입해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의 2연패를 끊었다. 10월에 부상으로 팀을 이탈한 것을 제외하고 맹활약했다. 특히, 시즌 막판 3연패를 당하며 서울과 성남에게 밀린 3위까지 순위가 급락했다. 그런 상황에서 최종전 두 경기인 전남전과 인천전에서 백지훈은 모두 득점하며 파랑새 역할을 제대로 했다.

 

백지훈은 결국, 챔피언 결정전 슈퍼매치에서 승리하며 개인 커리어 첫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리그컵 하우젠컵 우승을 포함해 더블을 기록했다.  시즌을 앞두고 영혼의 파트너인 이관우가 부상으로 아웃됐고, 백지훈의 약점을 봉쇄하던 조원희가 위건 애슬레틱 FC로 이적했고, 송종국이 다시 윙백으로 돌아가는 등 수원 중원에 큰 변화가 생겼다. 그런 상황에서 박현범, 안영학 등과 중원을 지켰다.

 

백지훈은 오래간만에 부상 없이 리그, FA컵, ACL 등 모든 대회를 병행했으나, 이전보다 공격포인트 생산력과 활동량이 크게 줄며 스포트라이트 대신 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리그에서 딱 한 골을 넣었으나 그마저도 패하며 파랑새란 별명이 무색했다.

 

백지훈은 후반기 김두현이 팀에 복귀하며 이관우처럼 좋은 호흡을 맞추나 했지만, 김두현은 이관우와 달리 백지훈과 좋은 호흡을 보이지 못했고, 시즌 막판 이길훈, 최성현 등 신인급 선수들에게도 경쟁에서 밀리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전북과의 개막전에 풀타임 출전했으나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이후 주닝요, 김두현, 송종국, 조원희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며 불안한 입지로 변했다. 결국 전반기에 리그에선 세 경기에만 출전하고 FA컵, ACL과 리그컵에서만 주로 출전했다.

 

백지훈은 그러나 2010년 6월 차범근 감독이 사임하고 윤성효 감독이 부임하고 첫 경기인 대구전 1골 1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후반기 시작 후 네 경기에서 2 득점 2 도움을 기록하며 수원 주전은 물론 새로 출범한 조광래호에 선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 너무 뛰지 못하다 갑작스레 기회를 받은 탓일까. 후반기 다섯 번째 경기인 8월 14일 울산과의 리그 16라운드에서 전반 부상을 당해 하프타임에 교체 아웃됐고, 2주를 쉬었다. 그러고 9월 초 강원전에서 복귀해 풀타임 출전한 후 다시 2주가량 쉬었다.

 

백지훈은 복귀 후 성남 일화 천마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8강전을 앞두고 체력 안배를 받아 리그 경기는 쉬었다. 하지만 9월 22일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 성남과 경기에서 무릎 연골 부상을 당해 전반 18분 만에 교체 아웃됐고, 그대로 시즌 아웃되며 기나긴 재활에 들어가게 되었다. 

 

백지훈
백지훈 인스타그램

 

백지훈은 이 부상으로 2010 시즌 잔여 경기는 물론, 2011 시즌을 통째로 날렸다.  이적 루머에 단골로 이름을 올렸으나, 팀을 떠나진 않았고, 2011 시즌이 끝나고 상주 상무 피닉스에 합격하며 상무에 입대했다.

 

백지훈은 2012년 3월 4일, 1라운드 상주 홈 개막전에서 후반 9분 고차원과 교체로 출전하며 무려 547일 만에 복귀했다. 박항서 감독은 백지훈 선수에 관해 아직 완벽한 몸상태는 아니지만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2012 시즌 리그에서 14경기 1 도움, FA컵에서 한 경기에 출전했다.

 

백지훈은 2013 시즌에는 신설된 K리그 챌린지에서 보내게 됐다. 로테이션 자원으로 분류되며 많은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 팀의 K리그 챌린지 원년 우승에 기여하며 11경기 1 득점을 기록했다.

 

2013년 11월 12일에 전역해 수원으로 복귀했지만, 리그 잔여 경기에는 모두 출전하지 않았다.  2014년 1월 28일 울산 현대로 임대 이적하였다. FA공시 자격을 미취득하여 아직까지 수원 소속이다. 백지훈은 이적료가 발생하는 FA지만, 울산-수원의 합의가 이뤄져 임대 이적이 가능해졌다. 

 

백지훈은 3월 8일 포항전에서는 교체로 출전해 나름대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새로 울산에 부임한 조민국 감독이 철퇴축구를 버리고 빠른 패스 위주로 팀 전술을 개편하기 위해 야심 차게 영입한 카드였으나, 부상 이전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다. 활동량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중앙 미드필더임에도 몸싸움을 피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스다 거르고 백지훈'이라는 밈이 생길 만큼 경기력에 큰 의문부호가 붙었다.

 

리그 19경기 2 득점, ACL 3경기 출전했다.

 

백지훈은 결국 부진한 성적과 여론을 반영해 1년 만에 윤정환 감독으로 교체했고, 가급적 지금 있는 자원을 그대로 살려 쓰는 운영 방침을 천명한 가운데, 백지훈은 1 시즌만에 수원으로 복귀하였다  시즌을 앞두고 팀을 떠나지 않을 것임이 발표되자 팬들은 많은 우려를 보였다. 서정원 감독은 김두현과 오장은 등 배테랑이 빠진 수원 중원에 백지훈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를 잔류시켰고, 5년 만에 빅버드에 복귀했다.

 

 포메이션을 쓰는 서정원의 수원에서 1을 맡고 있는 김은선이 부상당하자, 서정원 감독은 센터백 조성진을 올려 사용했지만 조성진의 빌드업 능력이 문제로 부각됐다. 그래서 패스에 장점이 있는 조지훈과 백지훈을 해당 자리에 놓았다.

 

그중에서 백지훈이 경쟁력을 보였다. 김은선 수준의 미칠듯한 중원장악 능력을 보이진 않지만, 창의적인 패스를 찔러주며 변화한 스타일로 경쟁력을 보였다.

 

백지훈은 그래도 중앙 미드필더 요원인 김은선의 공백을 훌륭히 메꿨고, 배테랑으로 팀 중원에 노련함을 더하며 권창훈, 산토스, 이상호 등과 좋은 연계를 보였다.

 

백지훈은 결국 리그에서 약 6년 만에 20경기 이상을 출전했다. 리그 21경기, ACL 4경기, FA컵 1경기에 출전했고, 수원의 K리그 클래식 준우승에 기여했다.  2016 시즌을 앞두고 수원과 1년 재계약을 맺었다. 김은선이 안산 경찰청으로 입대했기 때문에, 그의 대체자로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백지훈은 전반기에는 조원희, 산토스, 권창훈 등과 함께 중원에서 붙박이 미드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6월부터 팀이 스리백 카드를 꺼내드는 과정에서도 주전을 지켰다. 마치 과거 백지훈의 후방을 지켜주던 김진우, 김남일, 송종국처럼 이제는 백지훈이 권창훈, 산토스 등의 공격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희생하는 선수로 변모한 것이다.

 

그러나, 후반기가 시작하기 전에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했고, 그 사이 유스 출신 이종성이 2군에서 콜업돼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이용래 역시 부상에서 회복해 좋은 모습을 보이며 백지훈의 자리가 없어졌다. 7월 말 복귀했으나 두 번의 선발 기회밖에 얻지 못했다.

 

백지훈은 결국, 세대교체를 진행 중인 팀 사정에 따라, 재계약에 실패하며 입단 11년 차인 2016 시즌을 끝으로 수원을 떠나게 됐다.  서울 이랜드 FC 이후 한동안 무적 신분으로 지내다가 해가 바뀐 2017년 2월 5일 서울 이랜드 FC에 입단하면서 선수 생활을 지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7 시즌을 끝으로 서울 이랜드 FC와 계약이 만료되었고, 재계약이 되지 않아 무적 상태로 2018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리만 FC, 그리고 은퇴

한동안 뛸 팀을 구하지 못하고 무적 상태로 지내다가 작년 창단된 홍콩 프리미어 리그 팀인 리만 FC와 1년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올라왔다.  백지훈의 풍부한 경험을 보고 영입했다고. 이적이 성사되면서 2018~19 1년간은 홍콩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다행히 리그 적응도 잘하고 활약도 하면서 팀 내 입지를 다지고 있었고  2018~2019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결정하였다. 2019년 10월 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림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하나원큐 K리그 1 2019’ 33라운드 슈퍼매치에서 공식 은퇴했다. FC서울과 수원 삼성에서 뛰었고, 수원에서의 활약이 컸기 때문에 수원에서 은퇴식을 슈퍼매치에 맞춰 마련한 듯하다. 

 

 국가대표 청소년 대표팀 

 

2003년 말레이시아 청소년축구대회를 위해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U-20 대표팀에 만 18세의 나이로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소집되었다.

 

이후 2004년, 새로 출범한 U-19팀의 주장으로 선임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후반 10분 결승골이자 청대 마수걸이골이 골을 넣으며 1:0으로 한국이 승리했다. 당시 한일 청소년 대표팀 상대전적이 22승 4 무 3패로 압도적으로 한국이 우위에 있었지만 올림픽대표팀에 승선했던 히라야마가 버티고 있었고 원정이라는 열세에 있던 터라 쉽지만 않은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활약을 한 박주영과 백지훈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일본 킬러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백지훈은 부산 4개국 청소년축구대회에서도 당당히 승선하여 주축 공격라인으로 활약하였다. 미국과 폴란드를 꺾은 데 이어 사상 처음으로 브라질과의 경기에도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아무리 홈이라고 하지만 브라질 멤버들이 대부분 프로에 몸담고 있었고 FIFA주관 U-17, U-20 경기를 다 휩쓸었던 강팀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값진 승리였다. 물론 브라질 결승골의 주인공 박주영과 김진규가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잘생긴 외모와 매 경기 통쾌한 중거리슛을 날린 백지훈도 상당히 찬사를 받았다.

 

백지훈은 이후 부상을 당했지만 기존에 있었던 대표팀과 클럽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아청소년(U-20) 선수권대회 엔트리에 주장으로서 들게 된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동남아시아 우기까지 겹쳐 조별예선에서 탈락위기까지 몰렸지만 박주영의 활약으로 간신히 8강 진출하게 되고 우즈베크까지 꺾으며 4강 진출을 확정했다. 이후 4강 한일전에서 백지훈은 선취골을 넣으며 일본킬러로 확실히 눈도장을 받았고 팀은 2:2로 비겼지만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며 결승까지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중국이었는데 지긋지긋한 공한증의 역사를 중국에 다시 한번 뼈저리게 각인시키며 우승을 차지한다. 당시 성인대표팀이 성적부진과 졸전으로 많은 팬들의 질타가 있었기에 청소년대표팀의 선전과 투혼은 많은 축구팬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백지훈은 이 대회를 통해 신영록과 같이 차세대 스타플레이어라는 기대를 받게 된다.

 

백지훈은 2005년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청소년대회에서도 선발되어 공격진엔 박주영 중원엔 주장 백지훈, 수비진엔 김진규, 부동의 주전으로 뛰었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스위스 이기는' 심리전 3가지를 말했는데 상당히 순수하다. 물론 스위스한테 1:2로 패배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도 중거리슛은 상당히 위력적이었고 신영록의 선취골도 백지훈의 슈팅이 포문이 되었다. 이후 나이지리아전에선 인저리타임에 무각골을 넣으며 국민들에게 백지훈이라는 이름을 알렸고 그 경기와 골은 아직도 회자될 만큼 최고의 역전 명경기와 역전골이 되었다. 그리고 이 경기의 감동은 정치인들까지 이용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전에 모든 걸 쏟아붓는 태극전사들은 다음 브라질전에서 거짓말처럼 패배하고 만다. 세계선수권 조별예선탈락 이후 백지훈, 박주영, 박성화 모두 세계의 벽을 넘기 위해선 조직력과 체력, 투혼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고 선수개인기량 향상이 숙제라고 얘기했다.

 

백지훈은 분명 동 나이 한국 선수 중에선 최고의 미드필더이자 아시아에선 경기 운영 능력이나 중거리슛과 같은 능력은 월등히 좋은 선수였지만 세계 수준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는 대회였다. 하지만 FIFA에서도 예비스타로 낙점할 만큼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고 박성화 감독도 백지훈의 개인기량이 일취월장 발전했다고 한 점이 위안거리가 되었다. 잘생긴 외모와 나이지리아 전 역전골로 인해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백지훈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예선 대표팀에도 합류해 2차 예선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에서 최종 예선 진출을 결정지은 후반 30분 프리킥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했고,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본선 대표팀 최종 명단에도 포함되었으나 대표팀은 1승 1 무 1패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플레이 스타일

월드컵 국가대표팀에 뽑혔을 만큼 공격 가담 능력이 뛰어난 미드필더이며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다. 한편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받는 부분은 기복. 몇 경기에서 MOM급 활약을 보여주며 큰 인상을 남기다가도 몇몇 경기에서는 경기장에서 거의 안 보이는 닌자급 활약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잔부상 때문에 꾸준하게 출장하지 못하며, 간신히 출장해도 몸이 덜 만들어져서 활약 미진 - 몸이 만들어져서 활약 - 팬들 기대 - 부상 - 회복 - 몸이 덜 만들어져서 미진한 활약 식의 무한 로테이션을 탄다(...) FC Hospital에서 복귀하자마자 활약하는 토마스 로시츠키나 로빈 반 페르시가 이상한 것인지도

 

백지훈은 2009 시즌 이후부터는 공격형 미드필더치곤 패스의 정확도가 그리 높지는 않다는 점 또한 단점으로 꼽힌다. 그리고 공격에 특화한 선수라 아무래도 수비 가담 능력이 좋지 않아서 백지훈을 기용할 때에는 다른 미드필더에게 수비 부담이 따른다는 한계도 있다. 그나마 2015년 들어서 중앙 미드필더로 출장하면서 수비 가담에 잘 참여하기는 하지만 안드레아 피를로나 사비 알론소 같은 레지스타들처럼 3선에서 패스로 경기를 풀어가지 못하고 중원장악력이 우수하지도 못하다 보니 2015년부터는 다소 계륵 같은 위치에 있었다.

 

백지훈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양발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능력의 영향인 듯하다. 같은 팀 선배였던 이관우와 마찬가지로 양발잡이다. 코너킥은 왼발로 차고, 앞서 소개된 올림픽 대표팀에서 올린 프리킥 득점(영상 1시간 28분 26초부터)도 왼발로 찬 것이지만, 페널티킥은 오른발로 차고, 은퇴 이후에 합류한 슛포러브 지구방위대 FC에서 한 프리킥 대결(영상 4분 18초부터)은 오른발로 찬 것으로 보면 알 수 있다. 

 

 

백지훈
백지훈 인스타그램

 

백지훈 방송 활동

  • 2018년 5월 1일 자로 슛포러브자로 슛포러브  지구방위대 새 멤버로 합류하였다.
  •  KBS2의 위 캔 게임과 tvN의 골든일레븐에 출연했다.
  • E채널 노는 프로 2 고정멤버로 출연했다. 구본길과 라이벌리를 형성하며 여기서 얻은 별명은 백두부다. 잘 으스러지는 두부처럼 약체(...)라는 말이다. 그래서 전태풍은 편을 먹는 게임에서는 백지훈과는 팀을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 골 때리는 그녀들 시즌 2에서 FC 구척장신의 새로운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팀 평균 키보다 자신의 키가 더 작은 유일한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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