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화 프로필 활동 및 수상 내역 도시어부 진짜진짜 미안해
프로필
탤런트 영화배우
이덕화
출생 1952. 5. 8. 서울특별시
소속사 디에이와이엔터테인먼트
소속 한국영화배우협회(이사장)
가족 배우자 김보옥, 딸 이지현, 아버지 이예춘
학력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관련정보 네이버[지식백과] - 한국대중가요앨범11000
사이트 인스타그램, 공식홈페이지
이덕화 프로필
이덕화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에서 1952년 5월 8일에 태어났다. 본관은 연안 이 씨.
이덕화의 키는 174CM 체중은 85KG 혈액형은 B형. 신발 사이즈는 275MM이다.
이덕화의 가족은 아버지 이예춘 어머니 강원숙. 배우자 김보옥이고 아들 이태희와 딸 이지현이 있다.
이덕화의 학력은 서울동신국민학교 졸업했다.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 졸업했다. 경희고등학교 졸업했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학위가 있다.
이덕화의 병역사항은 대한민국 공군 보충역 방위병 상병 소집해제되었다.
이덕화는 1972년 동양방송 1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이덕화의 소속사는 디에이와이엔터테인먼트이다.
이덕화의 취미는 낚시, 골프, 축구, 검도이다. 이덕화는 만광이라는 호가 있다. 이덕화의 종교는 불교이다.
이덕화 활동
이덕화는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이덕화는 당대 터프가이의 대명사. 이덕화는 전성기에 반항적이고 거칠지만 여성을 목숨 걸고 사랑할 줄 아는 남성상을 연기했다. 1970년대엔 청춘스타로서, 1980년대와 90년대엔 주연급 남자배우로서 활약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군 장성, 재벌 총수, 기업 CEO, 대기업 오너, 국가정보원장, 국회의원, 대통령 등 높으신 분들을 연기한다.
이덕화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3학년 시절 비교적 어린 나이로 동양방송 13기 공채에 합격해 연기계에 입문했으며 야성적인 이미지로 큰 인기를 모은 하이틴 스타였다. <진짜 진짜 잊지마> 등 영화 "진짜 진짜" 시리즈에서 임예진과 콤비로 찍은 작품은 장안의 화제였다. 물론 24살의 나이에 고등학생 역을 맡았으며 게다가 당시 20대는 지금 20대보다 노안이라 지금의 30대 중반~40대 초반같이 보여 좀 괴리가 있다.
이덕화는 그 당시 임예진은 명실상부한 국민 여동생이었고, 상대역은 당연히 이덕화 아니면 전영록이었다. 영화 <진짜 진짜 미안해>, <진짜 진짜 잊지마>, <이런 마음 처음이야>, <이다음에 우리는>, <첫 눈이 내릴 때>, <맨발의 청춘(1979)>등을 이덕화와 함께 찍었다. 전영록과는 <너무 너무 좋은 거야> 등을 함께 했는데 작품의 숫자로만 봐도 이덕화와 함께 한 작품이 많다.
이덕화는 1970년대에는 TBC 공채로 간판스타였으나 1980년대 초반부터는 MBC로 무대를 옮겨 TV 드라마와 쇼프로그램 MC로 활약했다. 이 시절 사랑과 진실, 사랑과 야망이라는 대표작을 남겼는데 워낙 흥행작이라 그런지 자료가 남아서 2020년대 가끔 KTV에서 방영 중이다. TBC 시절 작품은 테이프 재활용으로 대부분 사라졌는데, 그래도 유튜브에 한두회 업로드된 작품이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복귀하여 많은 흥행 영화의 주연을 맡았고, 1989년, 1992년, 1993년에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획득했으며 1993년엔 살어리랏다로 모스크바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덕화는 나이가 들면서 나이 지긋한 아버지 역이나 사장님, 회장님, 혹은 조선시대 왕, 역사 유명인물 등으로 많이 출연해서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카리스마 연기를 보여주며 거물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현재는 과거와 달리 웃기면서 카리스마 있는 인물(대조영의 설인귀), (샐러리맨 초한지의 진시황)이라든가, 마냥 웃긴 인물(최근 드라마에서 그의 역할)을 맡기도 하면서 희극적인 방향으로 연기 변신을 꾀하고 있다. 물론 천추태후의 강감찬이나 근초고왕의 주몽 역처럼 고전적인 카리스마 역할도 여전하다.
이덕화는 당대의 탑 연기자로 청춘스타부터 액션, 멜로 등 다양한 연기를 했지만, 악역 연기까지 최고 수준이었다. 사실 악역 연기가 독보적이다. 특히 사랑의 종말의 남현필 회장은 인간이 어디까지 막 나갈 수 있는지를 똑똑히 알려준 배역이다. 이덕화는 여기서 전무후무한 최강의 악역을 시전 했다. 악역 전문 배우 지망생들에게는 사랑의 종말이 최고의 추천작이다. 그리고 제5공화국도 흑화 되는 육군 장성의 모습을 제대로 표현했다. 외모는 박용식이 갑이지만 행동은 이덕화가 갑이라는 얘기까지 있다.
이덕화는 준수한 외모로 패션모델, 광고 모델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쌍방울의 트라이 광고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음악은 요사이나 큰 차이가 없다.
이덕화는 MC계에서도 대활약했으며 곽규석의 뒤를 이어 1970년대 후반, MBC의 <토요일 토요일 밤에>의 남성 진행자로 당시 인기 여성 배우 겸 MC 명현숙과 호흡을 맞추면서 처음 MC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토요일 토요일 밤에>가 1981년에 <쇼 2000>으로 개편되면서 배우 이자 라디오 DJ 겸 TV MC 정애리와 호흡을 맞추었고, 그 이후로 여러 여자 MC와 호흡을 맞추어 진행하면서 쇼 프로그램 MC계의 간판스타로 활약하게 되었고, <쇼 2000>이 1985년 11월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이란 주말 밤 초대형 호화 버라이어티 쇼로 개편되면서 송옥숙을 시작으로 1991년 김희애 와의 진행을 끝으로 토요일 저녁 생방송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 거의 1n 년 동안 MC를 본 경력이 있다. 또한 1991년 민영방송국 SBS가 개국하면서 SBS로 넘어가서 개국 축하쇼를 진행하기도 하였고, SBS의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쇼 서울서울>의 초대 진행자로 1992년까지 진행한 이후에 <쇼 서울서울>은 정재환과 뮤직파워가 뒤를 이어 진행하면서 그는 MC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 이후 1993년 4월 11일 '93 KBS 신인탤런트쇼'에 MC를 맡았고, 12월 31일 93 MBC 한국가요제전을 끝으로 MC는 당분간 보지 않았다.
이덕화는 2000년대 중반 MBC의 <댄싱 위드 스타>란 동명 외국 프로그램의 한국판 리메이크 춤 경연 시리즈 프로그램을 마지막 시즌인 시즌 3까지 이소라(시즌 1), 김규리(시즌 2, 3)와 함께 진행하며 다시 MC로 복귀하여 다시 활약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대에는 KBS에서 이덕화쇼를 진행한 경력이 있고, 2020년대에는 MBC Every1에서 <나는 가수다>의 트로트 가수 버전인 <나는 트로트 가수다>를 단독 진행하기도 한 MC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나 신출귀몰한 레전드. 그때의 이덕화는 지금으로 치면 장동건과 유재석을 합쳐놓은 수준의 인물이었다. 당시 킨사이다 광고 #와 로얄디 # 광고를 보라! 금성 캐논 카메라# 광고에서는 손도 안 대고 플래시를 터트린다.
이덕화는 연기에 집중하느라 예능계에선 한동안 볼 기회가 없었지만 2008년부터 다시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 녹슬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덕화가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 출연하면 시청률이 5~7% 정도 오른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 3개의 고비가 있었다. 그것은 젊은 나이에 찾아온 탈모와 오토바이로 인한 교통사고, 총선 출마였다.
이덕화는 01~02년 여인천하 윤원형 이래 03~04년 무인시대 이의민과 금쪽같은 내 새끼 송민섭 - 05년 제5공화국 전두환과 황금사과 박병삼 - 06~07년 대조영 설인귀 - 08년 애자 언니 민자 한범만과 강적들 강민국 - 09년 천추태후 강감찬 - 10년 전우 사단장과 자이언트 황태섭 회장과 근초고왕 동명성왕 - 11년 마이더스 김태성과 스파이 명월 주회장 - 12년 샐러리맨 초한지 진시황과 메이퀸 장도현 - 13년 야왕 백창학과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 인조과 비밀 조한일 - 14년 호텔킹 이중구 - 15년 내 마음 반짝반짝 이진삼과 빛나거나 미치거나 왕식렴과 하이드 지킬, 나 구명한과 장사의 신 - 객주 2015 신석주 - 16년 몬스터 황재만과 38사기동대 왕회장 - 17년 피고인 2460과 수상한 파트너 변영희와 최고의 한방 이순태와 이판사판 도진명 - 18년 착한마녀전 오평판 테크를 밟으며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2010년 이후부터는 두개 이상 동시에 하고 있다. 다만 착한마녀전 이후로 드라마는 잠시 휴식기를 가졌으며 22년부터 다시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 대배우이다.
이덕화는 MC로써의 능력은 탁월하며 타고난 달변가이다. 작정하면 낚시라는 소재 하나로 2시간짜리 예능 프로그램을 꽉 채울 수 있는 사람이다. 원로배우답게 여태까지 삶의 경험으로 쌓인 각종 썰의 양도 어마어마한데, 타이밍을 조절하며 썰을 풀어내는 능력까지 탁월하다.
이덕화는 대표적인 취미이자 소재거리는 낚시다. 앞서 말했듯이 낙선 뒤에 무인도에 가서 낚시를 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로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전부 뒤로 자지러질 수준으로 재미있는데 지금까지 한 방송에서 똑같은 소재의 낚시 얘기를 겹쳐서 한 적이 거의 없다. 한 예시로 무릎팍도사(2008년 8월 27일)에 출연했을 때는 방송 분량의 상당량을 그냥 낚시 이야기로 채웠다. 진행자인 강호동과 유세윤, 올밴이 다른 이야기도 넣어서 진행해야 되는데, 낚시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MC들이 빵 터지고 당황하며 중간에 끊지도 못하고 계속 이덕화의 얘기에 끌려다녔다. 실제 내용은 낚시 이야기라기보단, 낚시하러 갔다가 갑툭튀 해서 생포한 다른 야생동물들 이야기라 월척은커녕 물고기도 아닌 이야기들이 많았다. 유명하고 인증숏도 있는 상어 낚시 말고도, 낚시하다 야생 오리, 갈매기, 노루, 거북이, 고슴도치를 우연히 생포했던 이야기를 무르팍도사에서 털었다. 여기에 낚시 이야기에 맞는 장면을 합성하다가 포기했는지 제작진들이 '이젠 어떻게 합성해야 되는지도 모르겠다'라는 자막을 올릴 정도였다.
이덕화는 다른 주력 소재로는 가발 이야기로 수십 분을 채운적도 있었는데 이때도 사람들이 배를 잡고 웃은 게 허다하다. 나이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는 이하늘과 낚시와 대머리를 소재로 하여 접근하자 금방 친해졌다고 한다.
사실 가발이나 낚시썰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걸 재밌게 풀어내는 이덕화의 언변이 대단한 것. 무슨 썰을 풀던 엄청 흥미 있게 말할 수 있는 달변가이다.
이덕화의 유행어는 그의 리즈시절에 "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MC시절 선보인 "부,타아악~ 해요~" 특히 이 멘트는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들을 소개하면서 곁들인 최고의 멘트였다. 당시 무대에서 최고의 카리스마로 인기를 얻었던 전영록이나 김완선을 소개하는 순서에서는 이 멘트가 절대로 빠지지 않았다. 아니, 이 멘트가 붙여지지 않으면 인기가수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할 정도로 최고의 멘트였다.
그리고 하이모 광고에서 나온 아~야~ 모발~ 모발~
부와 타악이 키 포인트. "해요~"는 말미에 살짝 붙이듯 하면 된다. 최대한 느끼하고 목소리를 최대한 깔면서 허스키하게 해야 한다. 이 느끼하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가 붙어서 교통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을 때도 자신을 돕던 행인이 "어? 이덕화 아니야?"라고 하자 "맞~아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덕화는 1992년에 SBS 쇼 서울서울을 마지막으로 정규 프로그램 MC를 은퇴한 이후 이후 간간이 특집프로그램 위주로 가끔 나오다가 1993년 MBC 한국가요대제전 MC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2009년 KBS 연기대상의 MC를 맡은데 이어서 2010년 추석, SBS 추석특집으로 '추석특집 스토리쇼 부탁해요'를 했다. 이덕화쇼에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선보였던 마이크 뜯어먹기 같은 것을 다시 보여주기도 했다. 보조 MC들로 신봉선, 아이유, 이홍기, 이수근, 주현미였다.
이덕화는 2011년 설날에는, 설날특집으로 MBC '아이돌 7080'을 호란과 진행한다고 한다. MBC 쇼프로 MC를 맡는 것은 거의 20년 만에 맡았다.
이덕화는 2011년 6월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후속으로 정규 프로그램인 댄싱 위드 더 스타의 진행을 맡았다. 시즌 1의 파트너는 이소라(모델). MC를 그만둔 지 20년이 지났지만, 20년 만에 녹화방송이 아닌 생방송 진행을 잘 소화했다. 그리고 시즌 2~3의 파트너는 김규리였다.
이덕화는 탈모 때문에 현재 그의 머리는 가발이다. 사고 후유증 때문에 머리가 타버려서 그랬다는 루머도 있으나, 그의 탈모는 사고 이전부터 있었다. 게다가 그의 부친이던 이예춘도 탈모가 있었고, 가발을 착용하거나, 일제 발모제를 쓰다가 냄새 때문에 상대 여배우한테 면박을 받기도 하는 등 2대가 탈모로 고생했다.
이덕화는 탈모가 시작되고도 한참을 가발을 쓰지 않아서 다들 대머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콤플렉스가 있어서 쉬쉬하지만 전부 다 알고 있는 그런 공공연한 비밀이었을 뿐. 하지만 본인이 가발회사 모델이 되어 크게 기사회생에 성공한 이후로는, 대놓고 대머리와 가발을 개그 소재로 쓰고 있다. 아예 일요일일요일밤에에서도 언급이 있는데 가발을 선택하는 매뉴얼에 운도형 가발, 덕화형 가발이 있다.
이덕화는 처음에는 탈모가 와도 가발을 쓰지 않았기에 고뇌하는 장면에서 남들은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데, 이덕화만 하늘을 쳐다보는 등 탈모를 숨기려 노력했다. 가발을 처음 착용한 때가 1987년 드라마 사랑과 야망인데, KBS2 <상상플러스> 시즌2 2008년 8월 5일 방송분 '대박대담' 코너에서 본인이 증언하길, 김수현 작가가 그 머리로 어떻게 주인공을 하느냐며 가발을 쓰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 촬영 중에 땅바닥에서 구르는 장면에서 가발이 180도로 돌아가서 다시 같은 장면을 서너 번 찍었단다.
이덕화는 들리는 말에 의하면 매니저의 가장 큰 업무가 가발을 가지고 다니면서 맞춰주는 것이라는데 만에 하나 기자들 앞에서 대머리가 공개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90년대에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개인적인 일로 멀리 있던 매니저가 기자보다 빨리 다가와서 황급히 환자의 머리에 가발을 씌워주었다 고 한다. 당시 자료 화면에도 침대 위에서 아파하는 이덕화의 머리 부분은 카메라 화면이 잘려있다.
이덕화는 사진의 탈모 상태가 엄청나 보이지만 실제로 사진만큼 벗겨진 것은 아닐 것이고 가발 착용을 위해 뒷머리와 윗머리 상당 부분을 삭발한 걸로 보인다. 자세히 보면 M자형으로 옅게 머리를 민 흔적이 있다. 2002년 5월 1일 수원공설운동장에서 개최된 한일 연예인 친선 축구대회에서 헤딩을 선보이다 카메라 앞에서 모자가 벗겨져 실제 머리가 공개된 이후에는 대머리를 숨기는 콘셉트에서 벗어났다.
그 후 2005년 제5공화국에서는 주인공역으로 출연하게 되는데, '이덕화가 가발을 벗고 TV에 나온다'는 사실만으로도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물론 다 깐 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전두환의 대머리 스타일을 맞추기 위해 위를 살짝 가리는 반백 가발(부분가발)을 쓰는 등 오히려 스타일링에 신경 썼다. 어쨌든 연기는 대단했는 데다, 이땐 오히려 대머리라는 점이 장점이 되어 악역으로서의 굉장한 시너지효과를 발휘해서, 이덕화의 전두환 연기는 그야말로 전설로 남았다. 외모로는 박용식이 더 닮았지만 카리스마 담긴 연기에 본방 방영 이후는 일부에서 제기하던 미스캐스팅 이야기가 쑥 들어간 것은 덤이다.
이덕화는 설운도와 함께 연예계 대머리 투톱이다. 이덕화와 호형호제하는 개그맨 최병서는 나중에 그의 조카딸과 결혼했는데, 신혼여행을 갔다가 수영장에서 누가 아는 척을 했다. 최병서가 누구시냐고 묻자, "나야, 나! 설운도!"라고 대답했다. 그걸 본 새색시가 깔깔 웃으면서 "어머, 우리 아저씨보다 심해!"라고 말했다는 뒷얘기가 있다.
이덕화는 2012년 연말시상식에는 반백 가발을 쓰고 나왔다. 이 이후로도 이제 나이가 71세이며 반백 가발을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서 쓰고 있다. 1999년 가발회사 '하이모'의 광고를 찍으면서 총선실패의 후유증을 이겨내고 다시 화면에 나올 수 있게 되었는데, 이후 당당한 탈모인으로써 2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하이모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하이모 회사 측에는 아예 이덕화에 대응하는 가발 전담팀이 있으며, 드라마나 영화에 이덕화가 캐스팅되면 대본부터 연구해서 극 중 캐릭터에 가장 잘 맞는 가발을 맞춤 제작한다고 한다.
또한 이덕화에게는 가발에 대한 슬픈 에피소드가 있다. 코미디언 이주일과는 살아생전에 나이를 초월해서 거의 절친에 가깝게 지내던 사이였는데 말년에 그만 이주일이 폐암 진단을 받고, 병세가 너무 심각한 수준이라서 그 달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할 것이라는 통보를 듣게 된다. 이 사실을 이주일 본인에게는 알릴 수 없었으나 가까운 주변인인 이덕화는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이주일은 가발 모델로 활동하던 이덕화에게 맞춤 가발을 부탁했고, 이덕화는 퇴원하고 나서 가발 맞추면 되지 않겠느냐고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결국 이주일이 원하는 대로 가발을 맞춰줬다. 이주일은 이덕화가 맞춰온 가발을 써 보더니 매우 흐뭇해하면서 "내가 완치되면 이 가발을 쓰고 미국을 다녀온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때 이덕화는 눈물이 핑 돌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주일이 2002년 월드컵을 산소 튜브 끼고 관람했던 게 바로 이 시기이며, 그로부터 2주일 뒤 이주일은 사망했다. 이덕화는 이를 회고하면서 "그 가발 쓰고 미국이나 한번 가 보고 돌아가시지..."라고 아쉬워했다.
절친 김하균이 모발이식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이 모발이식을 권유받았지만 가발회사와의 24년 전속광고 모델의 관계를 생각해서 거절한 게 밝혀졌다.
이덕화는 무려 2번이나 큰 교통사고를 당한 인물이다. 특히 첫 번째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했다. 청춘스타로 잘 나가던 1977년 4월 7일,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중 현재의 한남동 타워호텔 앞 고가차도 부근에서 시내버스와 충돌하여 수십 미터를 끌려가는 큰 사고를 당했다. 이때 정말 크게 다쳐서 동아일보, 경향신문 등 각 일간지 사회면에 기사가 실릴 정도였으며, 당대에도 재기하지 못할 것이란 얘기가 많았다.
3년 넘게 투병해야 했는데, 이덕화 본인 말로는 처음 10달 정도는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아침에 비명으로 깨서 저녁에 비명에 잠든다고 표현했을 정도. 그도 그럴 것이 그 10개월 동안 이덕화는 툭하면 생명이 위독해져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이덕화 때문에 긴급호출되는 일이 빈번했다. 이렇게 생명이 위독할 때마다 이덕화는 '아, 이제 난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운 좋게 버텨냈고 살아남아서 일반병실로 옮겨져 2년 정도 더 치료를 받았다. 당시 영화 상대역으로 자주 호흡을 맞추었던 임예진이 문병을 갔는데, 사고를 당한 몰골이 너무 처참한지라 사람이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온몸이 너덜너덜해져 있어서 마치 시트와 매트리스 사이에 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고 회상했다. 너무 무서워서 가까이 못 가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봤어야 했다고 술회할 정도. 이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고였냐 하면 이덕화는 엉덩이살이 아예 없어져서 다른 부위의 살을 이어 붙여 엉덩이를 새로 만들어야 했으며 1,500 바늘이나 꿰매는 초대형 수술을 받았다.
이 당시 이덕화의 아버지인 원로배우 이예춘은 투병 중이었는데,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그만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이덕화의 아내인 한국무용가 김보옥 씨의 말에 따르면 병실 앞에서 이예춘이 선 채로 의식을 잃어 실금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최불암 등 MBC 소속 탤런트들이 이덕화가 교통사고로 입원했을 때 이덕화에게 성금을 보내기도 했다. 이덕화 본인은 훗날 방송에서 여러 번 아버지를 언급하였는데, 위독해진 아버지를 자신(이덕화 본인도 부상이 심각하니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과 어머니 등 주변 사람들이 병원의 다른 층으로 침대를 밀며 이동시키는 중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덕화 본인의 손을 잡고 운명하였다고 한다. 자신이 사고를 당한 충격 때문에 아버지가 사망한 것에 부채감을 느낀다고도 언급하였다. 이예춘은 사망 직전까지도 아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덕화는 이 사고의 여파로 정도가 2019년 6월까지는 3급 지체장애인이었다. 본인이 장애가 있음에도 19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식 석상에서 상대 후보였던 김대중과 정주영을 장애인에 빗대 비하했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이로 인해 비판받았지만 본인은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애초에 저 두 사람은 각기 친구 아버지와 애증의 관계이거나 정치에도 뛰어든 지인을 직접 영입한 입장이니 타격만 받을 일이다. 사고 당시에 생긴 흉터가 있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대중목욕탕을 갈 수 없다고 한다.
사고가 난 오토바이는 가수 겸 배우 전영록의 오토바이였다고 한다. 전영록의 부친 황해는 아들이 오토바이를 절대로 못 타게 막았고, 이덕화가 빌려 타다가 사고가 난 것이다. 사실 이덕화는 당대 기아(기아-혼다)에서 판매하던 오토바이 광고 모델도 하는 등 오토바이를 매우 좋아하였다.
후에 이덕화는 방송에서 이 당시에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 김보옥이 3년간 힘들게 자신을 돌봤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것도 자신의 대소변까지 다 받아주는 수준으로. 자기 만나지 말고 다른 사람 만나라고 하는 이덕화를 정말 헌신적으로 돌본 모습에 감동받아 결혼했으며, 자신의 인생은 내 인생이 아니라 이제 부인이 만든 인생이다 생각해 재산 전부를 부인 명의로 해놨다고 한다. 이덕화 본인이 아내에 관한 이야기는 2019년 2월 26일 시작한 1인방송 티비의 1화 에피소드의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이덕화는 아내가 아들을 임신했을 때는 자신도 병원 간이침대에서 잠을 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몸이 욱신거린다는 느낌은 들었었지만, 아내가 자신이 입원했을 때 3년을 이러고 살았었다는 걸 회고하면서 참아냈었다고 한다.
이덕화는 1990년 6월 24일에 전라북도 정주시(현 정읍시) 정일동의 한 삼거리에서 이덕화가 몰던 지프가 버스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갈비뼈 3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다행히도 첫 번째 사고만큼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는 않아서 치료 도중에도 영화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이덕화는 치명상만 입지 않았을 뿐이지 이 사고도 대단히 위험할 뻔했다. 두 시 탈출 컬투쇼 2015년 8월 4일 방송에서 당시 정황을 언급했는데, 낚시를 하러 가다가 당한 사고였다고 한다. 자동차 전방 유리를 뚫고 보닛까지 상반신이 나왔지만 갈비뼈는 유리 사이에 끼어 버린 상태였다. 근처에서 가게를 하던 어느 아주머니가 수건을 갖고 나와서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닦으며 돌봐 주었는데, 이덕화가 나중에 그 여성에게 따로 찾아가 감사인사를 했다고 한다.
못다 한 이덕화 이야기
2023.10.02 - [분류 전체 보기] - 이덕화 프로필 7인의 탈출 (방칠성 역) 사랑과 진실 제5공화국
이덕화 그 외 활동: 저서
출간 연도 | 출판사 | 저서명 | 비고 |
1996년 | 태일출판사 |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 이덕화 |
이덕화 수상 경력
연도 | 시상 | 수상부문 | 비고 |
1983년 | MBC 연기대상 | MC부문 특별상 | |
1985년 | 제21회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인기상 | 사랑과 진실 |
1987년 | 제23회 백상예술대상 | TV부문 인기상 | 사랑과 야망 |
1988년 | 제24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접시꽃 당신 |
1989년 | 제28회 대종상영화제 | 남우주연상 | 추억의 이름으로 |
1990년 | MBC 연기대상 | MC부문 특별상 | |
1991년 | 제2회 춘사대상영화제 | 남우주연상 | 개벽 |
1992년 | 제30회 대종상영화제 | 남우주연상 | 개벽 |
제28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인기상 | 개벽 | |
1993년 | 제18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 은게오르기상(남우주연상) | 살어리랏다 |
제31회 대종상영화제 | 남우주연상 | 살어리랏다 | |
제4회 춘사대상영화제 | 남우주연상 | 살어리랏다 | |
화관문화훈장 수훈 | |||
1994년 | KBS 연기대상 | 대상 | 한명회 |
2005년 | MBC 연기대상 | 연기자 부문 특별상 | 제5공화국 |
2007년 | KBS 연기대상 | 남자 최우수연기상 | 대조영 |
2010년 | SBS 연기대상 | 특별기획부문 조연상 | 자이언트 |
2011년 | 제49회 영화의 날 | 배우부문 자랑서운 영화인상 | |
2012년 | MBC 방송연예대상 | 쇼/버라이어티부문 인기상 | |
MBC 연기대상 | 남자 황금연기상 | 메이퀸 | |
SBS 연기대상 | 미니시리즈 부문 남자 특별연기상 | 샐러리맨 초한지 | |
2014년 | SBS 연기대상 | 단막특집극 부문 특별연기상 | |
2015년 | 은관문화훈장 수훈 | ||
SBS 연기대상 | 공로상 | ||
2017년 | 제6회 대한민국 톱스타상 시상식 | 특별공로상 | |
2018년 | 제24회 연예예술상 | 대상 | |
2019년 | 고객브랜드충성대상 | 남자배우부문 | |
2021년 | MBC 연기대상 | 공로상 | 옷소매 붉은 끝동 |
7인의 탈출 드라마 소개
7인의 탈출
SBS
드라마
금. 토 오후 10:00
2023. 9. 15.~ (17부작)
소개
수많은 사람들의 거짓말과 욕망이 뒤엉켜 사라진 한 소녀. 소녀의 실종에 연루된 7명의 악인들의 생존 투쟁과, 그들을 향한 피의 응징을 그린 피카레스크 복수극
제작 박영수(기획) 서균(프로듀서) 주동민(연출) 김순옥(극본)
출연
매튜 리 역 (엄기준) 금라희 역(황정음) 민도혁 역 (이준) 한모네 역 (이유비)
차주란 역(신은경) 양진모 역(윤종훈) 고명지 역(조윤희) 남철우 역(조재윤) 방칠성 역(이덕화)
강기탁 역(윤태영) 방다미 역(정라엘) 이휘소 역(민영기) 박난영 역(서영희) 주용주 역(김기두)
홍만두 역(안은호) 노팽희 역(한보름) 지아 역(정다은) 유진 역(엄지윤) 소연 역(장하경)
윤지숙 역(김현) 한경수 역(은해성) 한정수 역(이유진) 민재혁 역(임성균) 정미소 역(이종남)
7인의 탈출 드라마 출연진 소개: 방칠성 역 이덕화
방칠성 역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전설적인 현금 부자. 허투루 쓰는 돈은 한 푼이라도 두고 보지 못하는 꼬장꼬장한 구두쇠다. 가족들과도 연을 끊고 세입자 주란에게만 마음을 터놓고 지냈지만,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피붙이 손녀로 인해 복잡한 심경에 빠진다.
출처 : 공식홈
이덕화 (영화배우, 탤런트) 1952.05.08 7인의 탈출 (2023), 스틸러 : 일곱 개의 조선통보(2023), 나만 믿고 먹어봐, 도시횟집(2023),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5(2023) 등
2023.09.23 - [분류 전체 보기] - 7인의 탈출 SBS 금. 토 오후 피카레스크 복수극 드라마 인물관계도 및 출연진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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